“꿈꾸는 것 같아.” – 라고, 가까운 사람이 소리 내어 말했을 때, 곁에 있던 나는 그가 꾸는 꿈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 이때의 몽롱한 경험은 몇 가지 생각들로 이어졌는데, 그 생각들이란 좀처럼 구체화되지 않는 의문스러운 상황을 놓고 그에 대해 주석을 다는 식이었다. ‘꿈꾸는 것 같아’라는 문장의 신비에 대해, 발화 직후 발화자와 청자가 모두 이상한 시공간으로 진입하는 느낌에 대해, 타인의 꿈 속에 개입할 수 있는 (혹은 없는) 정황에 대해….
임소담은 자기 작업이 “꿈을 꾸는 것과 같다.”[i]고 말한다. 꿈을 이야기하는 예술의 역사는 거론하기 새삼스러우리 만치 오래된 것이고, 예술은 꿈을 개인의 자아/무의식으로 채워진 폐쇄된 공간이자 거기서 본 무엇으로 형상화하곤 했다. 그에 반해, 다른 이의 손짓, 행위, 사용을 요청하는 꿈과 그것을 다루는 작품은 드물고 낯설다. 말의 형태로든 시각적이거나 촉각적인 이미지의 형태로든, 꿈꾸는 (듯한) 일이 누군가의 머릿속을 벗어나 밖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여전히 꿈이기는 하되 타자의 개입을 허용하는 아주 예외적인 것이 된다.
‘꿈’은 수면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는 멀쩡히 두 눈을 뜬 채로도 꿈을 꾼다. 작가는 여느 가정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낡은 장식장에 진열된 본차이나 찻잔/식기에서 또 다른 의미의 꿈을 발견한다. 이 기물들은 한때 이상적으로 그려졌던 중산층 가정의 모델을 상징하고, 결혼이나 해외여행 같이 드물게 호사스러웠던 행사를 기념한다. 이상과 추억, 상징과 기념인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꿈’이다. 임소담의 작업들은 두 개의 꿈을 겹쳐 보인다. 두 개의 꿈은 모두, 꿈꾸는 자의 소망, 기억, 현실이 뒤엉켜 구성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이 거기 펼쳐지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과 이미 지난 것, 그리고 현재가 한 데 뭉친 채, 1인칭 또는 3인칭 시점으로, 서사가 있거나 없거나, 선명하거나 희뿌옇게, 꿈 이미지가 영사된다.
임소담에게 꿈은 서사보다는 이미지에, 현실보다는 상상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으레 꿈의 시공간에서라면 허용되는 인식의 오류들과 허황된 가정들을 이미지 그대로 포착하려 한다. ‘한 개 손잡이에 달린 두 개 컵, 서너 개가 연이어 붙어있는 컵, 덤불 속을 헤매는 숨바꼭질과 거기에 갇힌 새들, 얼굴들, 공중에 홀로 떠서 물을 떨어트리는 찻잔 … ‘과 ‘언젠가 저 찻잔에 어울리는 근사한 테이블을 마련하고 고전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여럿의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그려 보기’ 같은 것. 그런 이미지들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얽히고,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관습, 한편에 놓인 개인의 욕망, 나아가 (가져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덧씌워진다.
이를 익숙하지만 생경한 상태 그대로, 우연인 양 즉흥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작가는 드로잉을 시도한다. (2022)에서 두 손이 얼굴/모양/이미지를 떠내는 장면은, 작가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속도감, 가벼움,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드로잉에 기대어 작가는 중력 없는 꿈 속의 이미지들을 양손 가득 길어 올린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페인팅과 병행하던 드로잉 중 세라믹 작품만을 선택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어느 순간, 그림의 바탕이 되는 ”캔버스가 하나의 화면이라기보다는 나무로 만들어진 입면체로 느껴”[ii]졌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 이행된 그의 드로잉은 (2022)에서처럼 입방체에 곡선을 도입하거나, 일정하게 구획된 표면을 움푹 패이도록 눌러버리거나,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또는 굴절되게 하며 꿈의 세계를 구현한다.
작가가 “보는 사람의 감각에 대해서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iii]하는 동안에도, 특수한 목적으로 조성된 이 공간에서 기능하는 작품들은 스스럼없이 상대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 제스처에 반응하는 당신에게는 이제 몽상의 세계를 혀로, 눈으로, 손끝으로 느껴볼 일이 남았다. 꿈은 유약을 수채화 그리듯 발라 만든 서정적이고도 기이한 형상으로, 울퉁불퉁한 표면, 흔적으로서의 손짓, 그 촉감을 가지고 당신 앞에 놓인다. 당신은 차를 내고 다과를 담은 잔과 그릇을 본다. 그리고, 사용되기 위해서라기보단 다른 데 더 관심있어 보이는 절뚝거리는 그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굳이 프루스트의 마들렌을 들먹이지 않아도,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와 그윽한 향을 따라 당신은 어느덧 다른 차원에 진입할 것이다. 꿈꾸는 것과 같이, 꿈꾸는 이의 꿈 속으로.
글 허호정
[i] 심소미, 「임소담의 회화: 눈-손-마음」, 개인전 《Eclipse》(2015.03.04.-04.10. Gallery Skape) 서문에서 인용, 작가의 말.
[ii] 『헬로! 아티스트』 인터뷰 중,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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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안소연, 「그림에 육체와 영혼이 있다면, 영혼에게 자유를 허락하세요.」, 개인전 《Shape of Memories》(2018.05.16.-06.15.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리뷰에서 인용, 작가의 말.
[1] 심소미, 「임소담의 회화: 눈-손-마음」, 개인전 《Eclipse》(2015.03.04.-04.10. Gallery Skape) 서문에서 인용, 작가의 말.
[1] 『헬로! 아티스트』 인터뷰 중, 작가의 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9598&cid=59154&categoryId=59154 (2022-08-08, 00:56, 최종접속)
[1] 안소연, 「그림에 육체와 영혼이 있다면, 영혼에게 자유를 허락하세요.」, 개인전 《Shape of Memories》(2018.05.16.-06.15.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리뷰에서 인용, 작가의 말.